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늘 같은 패턴이었어요. 가방 내려놓고, 소파에 눕고, 휴대폰을 만지작. 그렇게 한두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도 마음도 더 무거워지더라고요. 어느 날은 그냥 신발부터 신었습니다. “딱 10분만 걸어보자.” 별 기대 없이 나갔는데, 생각보다 머리가 맑아져서 그날 이후로 저녁 산책을 습관처럼 이어가고 있어요.
왜 하필 ‘저녁’일까
아침 산책도 좋지만, 저는 저녁이 맞았습니다. 하루 동안 쌓인 생각이 많을 때, 적당한 어둠과 선선한 바람이 잡념을 눌러줘요. 조용한 동네길을 걷다 보면 낮에 신경 쓰였던 일들이 거리를 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이건 오늘 여기까지만.” 선을 그을 수 있게 돼요. 무엇보다 준비물이 없다는 게 장점입니다. 운동복, 헬스장, 시간표… 이런 걸 떠올리면 시작도 못 하거든요. 편한 신발 하나면 충분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 제가 잡은 기준
처음부터 30분, 1시간을 목표로 두면 금방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낮췄어요. “집 앞 골목을 한 바퀴만 돌아오자.” 비가 와도, 피곤해도 이 정도는 되더라고요. 대신 몇 가지 규칙을 붙였어요. ① 이어폰은 음악만, 뉴스나 영상은 금지(머리 쉬게 하기). ② 걸음 속도는 편안하게, 숨이 약간 가쁠 정도까지만. ③ 돌아오는 길에 물 한 컵 마시기. 이 세 가지를 붙이니 ‘산책’이 리셋 버튼 역할을 하더군요.
몸이 먼저 반응했다
저녁에 걸으면 잠이 일단 달라집니다. 누워서 뒤척이던 시간이 줄었어요. 깊게 자는 날이 늘어나니 다음 날 아침이 덜 버겁습니다. 어깨나 허리도 덜 뻐근하고요. 막 특별한 운동을 한 건 아닌데, 하루의 남은 에너지를 얌전히 흘려보낸 느낌입니다. 덤으로 소화도 잘 돼요. 늦게 먹은 날에는 그냥 10분만 돌고 오세요. 그 10분이 속을 편하게 해 줍니다.
생각도 정리가 된다
걸을 때는 억지로 생각 정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둡니다. 가로등, 편의점 불빛, 골목의 고양이. 그런데 신기하게도 집에 돌아오면 해야 할 일들이 짧은 리스트로 정리돼 있어요. ‘내일 오전에 이거 하나, 오후에 저거 하나.’ 머릿속에서 우선순위가 조용히 정렬됩니다. 산책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지만,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머리를 비워주는 시간 같습니다.
꾸준함을 도와준 작은 장치들
사실 의지가 매일 탄탄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현관에 신발을 가장 앞줄에 놔두고, 주머니에는 가벼운 이어폰을 미리 넣어두죠. 핑계 댈 시간을 줄이는 겁니다. 또, 캘린더에 걸은 날에만 작은 점을 하나 찍습니다. 줄줄이 점이 이어지면, 그날은 비가 와도 우산 쓰고 나가게 돼요. 기록이 주는 힘이 생각보다 큽니다.
처음 시작하는 분께
목표를 너무 크게 잡지 마세요. 7일 중 3일만 나가도 충분합니다. 시간은 10분이면 됩니다. 대신 “나가서 한 바퀴”라는 문턱을 낮추세요. 중간에 지인 전화가 와도 괜찮고, 편의점 들러 물 하나 사서 들고 걸어도 좋습니다. 산책은 성과를 보여주는 운동이 아니라, 하루를 다독이는 루틴에 가깝거든요. 오늘도 많이 애쓰셨으면, 집 안에만 갇혀 있지 말고 바람을 한 번 맞고 오세요. 돌아오는 길에, 생각보다 가볍게 웃게 될지도 몰라요.
완벽한 루틴은 없습니다. 대신 ‘가능한 루틴’이 있어요. 저에게는 그게 저녁 산책이었습니다. 오늘은 신발만 신어보세요. 그 한 걸음이 내일을 좀 더 편하게 만듭니다.